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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임영규 “재기 성공하면 꼭 다시 바이크 시작하렵니다”

백현주 교수/방송인 20-09-28 11:14 조회수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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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 9 작성일20-09-28 11:14 조회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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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역사에는 리메이크를 거듭해도 히트를 치는 절대 불변의 인기 드라마 소재들이 존재한다. 물론, 시대를 거듭해도 안방극장 흥행을 리드하는 필수 인기 등장인물도 존재한다. 드라마 히트 제조 등장인물들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장희빈, 인현왕후, 허준, 영조대왕, 세종대왕, 태조 이성계와 이방원, 세조, 연산군 등등 주로 사극의 등장인물들이다. 

그 중 비운의 폭군 연산군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리메이크에 리메이크를 거듭했다. 연산군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들은 모두 연산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연산군 역할을 맡은 배우에 따라서 혹은 서사를 푼 관점에 따라서 각기 넘치는 이야깃거리로 시청자들과 관객들을 흡인해 왔다. 
원로배우 신영균, 이대근을 비롯해 임영규, 유동근, 안재모, 정진영, 정태우, 김강우, 이동건, 진태현 이들은 각각의 매력과 내공으로 연산군을 풀어냈는데, 이 뛰어난 배우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온 국민적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시절의 연산군을 꼽으라면 80년대 국민드라마였던 ‘조선왕조오백년-설중매’의 연산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임영규가 표현한 연산군이다. 얼마 전 M스토리와 만난 배우 임영규는 그 때 당시 인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차인태 전 아나운서가 생방송에 우리(주인공 임영규 이미숙)를 초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당시 월요일 화요일 아홉 시 오십 분 되면 아파트 한 동에서 일제히 물 내려가는 소리가 ‘쏴’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왜요?’하고 물으니  ‘설중매’ 보려고 동시에 소변을 본다는 거에요.”  불과 4-5회차 방송이 나갔을 무렵인데도 이미 임영규는 국민 배우로 등극한 셈이다.  

임영규씨는 당시 생방송 출연 직후 진행자에게서 들은 자신의 인기를 실제로 느껴보고자 상대역 장녹수로 출연했던 동료 배우 이미숙과 함께 일부러 강남으로 나가 밥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식당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임영규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는 선배들의 말이 실감이 되면서 희한하더라고요.”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당시를 회상했다.  

거의 데뷔와 동시에 시청률 60퍼센트를 육박하는 대하드라마 110부작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던 임영규. 그는 소위 잘나가는 부잣집 도령, 엄친아 배우였다. 유복했던 환경이 오히려 독이 되어 중학교 때까지는 영어 웅변대회에서 3등도 하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지만, 고등학교 진학 무렵부터 뚝심 있게 파고드는 공부보다 노는 것에 더 흥미가 붙어 부모님 속을 깨나 썩였던 아들이었고 그런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재능을 부단히 찾아보던 아버님의 노력 끝에 연기에 흥미와 재능이 있던 점을 찾아내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임영규씨는 영화 ‘파계’로 공식 데뷔를 하게 된다. “(안양예고)들어가니 체질이 나랑 딱 맞는거에요. 실기를 많이 했어요. 연극, 영화, 태권도, 승마, 노래 이런 거 배우니까 신바람이 난거죠.”

실기 중심의 교육에 흥미를 붙인 임영규는 당시 살던 반포 집에서 안양 학교까지 바이크를 타고 등하교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80년 정식으로 MBC공채 탤런트 모집에 지원을 했고 4천대 1의 관문을 뚫고 수석 합격한 이후 엑스트라 생활을 불과 두 달 밖에 하지 않았을 정도로 소위 잘나가는 배우였던 임영규는 배우 생활을 바쁘게 하는 내내 바이크를 즐겨 탔다고 한다. 

반공드라마 ‘3840유격대’ ‘포옹’‘알뜰가족’ 등 당시 MBC를 드라마 왕국으로 이끌었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잘 나가던 임영규씨는 동료배우인 견미리씨와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후 유제품과 즉석식품의 광고 모델로도 부단히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하지만, 몇 년 뒤 전 부인과 다른 삶을 선택한 뒤 미국행을 결정했고 가서도 한동안 사업도 하며 호화스러운 나날을 누렸다. 그때까지도 바이크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갔는데 어느 날 다시 바이크에 올라앉을 계기를 만나게 된다.  

경황없는 세월 속에 잃어버렸던 바이크의 낭만이 임영규의 뇌리를 관통한 것인데,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을 갔는데 돈 많이 갖고 갔잖아요. 내가 리무진도 타고 그랬는데 어느 날 산타모니카 프리웨이 타고 시내를 딱 들어갔는데 체격 좋은 노란 머리 미국인이 기가 막힌 바이크를 타고 지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리무진보다 저걸 더 좋아한다.’하고 곧바로 엄청 비싼 거 큰 거 1장 짜리 바이크를 샀어요. 그 뒤 매일 우리 사무실이 LA 윌셔가에 있었어요.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인데, 거기에서 산타모니카까지 기사 있고 리무진 있어도 일부러 가죽 재킷 입고 바이크 탔죠.  그때 머리 길었잖아요 젊고, 라이방 선글래스 끼고 타고 다녔어요” 하지만, 꿈같은 나날은 길게 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영규씨는 사업에 실패를 하게 되었고 가졌던 모든 걸 팔고 빈털터리가 되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게다가 마음속에 늘 애틋하게 보고픈 두 딸의 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뀐 것을 안 뒤부터는 더욱더 술에 의존하며 살았다고 한다. “2015년까지 서너 달에 한 번씩 네이버에 일등으로 떴어요. 화 엄청냈어요. 술 엄청 먹었어요. 담배도 엄청 피웠고, 그 당시 알코올 치매가 걸려서 남이 뭐라고 하면 시비 걸고, 자다 보면 파출소 천장이 보이고. 거기서 잔거죠.” 

하지만 최근 5년간 임영규씨와 관련된 사건사고 뉴스는 싹 사라졌고, 그 비결이 무엇인가 취재해보니 바로 신앙생활이었다.  임영규씨는 얼마 전까지 간증 유튜브를 했을 정도로 신앙생활에 많이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신앙생활에 대해 묻는 필자에게 임영규씨는 “얼마나 감사해요. 하나님이 나한테 사명을 주신 거죠. 전도도하고 간증 유튜브도 하고 지금은 중단했지만. 다행인 게 이분(하나님)을 안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어요”라며 최근에는 평생학습원에 교수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된 근황도 M스토리에 최초로 공개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수님이 되었어요 연극영화학과.덕성여대 평생교육학습관에 연극영화학과 교수가 되었어요. 내가 맡은 건 연극영화학과에요. 5개 과정이 있는데, 노래교실도 있고 심리치료 밸리댄스 등 모든 과정은 나이 관계없이 듣는거에요.”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있는 연기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인생 3막을 조심스레 연 임영규씨는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싶고 또 교회 일도 가능한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덧붙였다. 

임영규씨는 궁극에는 연기자로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면 딸들도 떳떳하게 만나고 싶고 청춘 시절부터 즐겨 타고 정말 좋아했던 바이크도 재도전할 생각이라는 포부를 전하며 M스토리와의 반가운 인터뷰에 마침표를 찍었다.                       

 

※코로나19 수칙을 준수하며 촬영했습니다.


[장소제공: 수잔나의 앞치마](서울 중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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